동남아시아 건축

베트남 호이안의 중국풍 목조건축과 상업 지구의 건축문화

think-1999 2025. 4. 25. 21:36

동남아시아 건축은 역사적으로 교역, 식민 지배, 이민 흐름 속에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복합적인 특징을 형성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베트남 중부의 도시 호이안(Hội An)이다. 호이안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상인들이 활발히 드나들던 국제 무역항이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 일본, 프랑스, 베트남 전통문화가 한데 섞인 독특한 도시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다. 특히 이곳의 목조건축 양식과 상업 건축 배치 방식은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보기 드물게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유산이다.

호이안의 전통가옥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상점·창고·거주지가 하나로 통합된 상업 복합형 건축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라이브-워크 하우스(live-work house)’라 불리는 개념과 유사하지만, 이미 수백 년 전에 호이안에서는 이를 실용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중국계 상인들의 건축 미학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목재 구조, 상하 구조, 내부 채광 방식, 입면 비례 등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중국풍 목조건축 양식의 도입과 현지화

호이안의 주요 건축 양식은 중국 남부 푸젠성과 광둥 지역의 화교 목조건축에서 유래되었다. 이주해 온 중국 상인들은 베트남 중부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전통 중국식 건축 양식을 일부 변형하면서 현지화된 구조를 형성했다. 대표적으로, 외벽은 두껍고 창이 작아 강한 햇빛을 차단하고, 내부에는 높은 천장과 통풍 창구를 통해 자연 환기를 유도하는 구조가 돋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가옥은 2층 이상 구조를 가지며, 1층은 상업 활동을 위한 공간, 2층은 거주 또는 재고 보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 구조는 베트남 전통 주거와는 다른 개념으로, 명확한 기능 구분과 상업 중심의 도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건물 외관은 주로 붉은 목재 기둥과 노란 회벽, 목조 창틀과 덧문, 그리고 지붕 양쪽 끝의 곡선형 마감으로 구성된다. 이 양식은 화교 건축의 상징성과 지역의 습기·폭우에 대한 적응력을 결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가 형식은 중국풍이나, 재료와 마감, 내부 장식은 베트남 전통 요소가 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벽화에는 용이나 봉황 대신 벼, 연꽃, 물소 등의 현지 생태계가 자주 등장하며, 불교적 장식보다는 유교적 좌우명이나 가훈이 적혀 있다. 이러한 건축은 단순한 양식의 수용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외래문화의 섬세한 통합이라 할 수 있다.

상업 지구로서의 건축 배치 방식

호이안 구시가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건축물들이 철저한 상업 목적에 맞춰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가옥은 좁고 긴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지세와 세금 제도에 따른 실용적 판단의 결과다. 당시 세금은 ‘도로에 면한 폭’에 따라 매겨졌기 때문에, 건물은 도로와 닿는 면을 최소화하고 뒤로 깊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통풍과 채광에 불리할 수 있지만, 내부 중정(中庭)과 천창 구조를 통해 해결되었다.

각 가옥은 전면은 상점, 중간은 안뜰과 부엌, 후면은 창고 또는 가족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이 구조는 가족 중심의 상업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전통 호이안 건축에서는 안뜰(courtyard)이 핵심 공간인데, 이는 빛과 바람을 공급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제례와 명상, 가족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이처럼 호이안 건축은 상업과 가족, 기능과 정신성, 실용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구조다.

건물 간에는 일정한 간격이 유지되며, 골목길과 물길, 건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전통적인 동남아 도시들과 달리, 상업 도시로서의 기능성과 미학을 동시에 고려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도 이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도보 중심의 이동 시스템과 건물 간의 시각적 조화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문화·종교 공간으로서의 건축 확장

호이안의 건축은 단지 주거와 상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와 종교를 담는 공간으로도 진화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화교 회관(Assembly Hall)들이다. 푸젠회관, 광둥회관, 하이난회관 등은 지역 상인 공동체가 모여 제사와 회의를 열고, 교육과 구제를 실시하던 공간이다. 이 회관들은 대부분 장대한 목조 구조와 조형미를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사당, 연못, 중정, 회의실이 함께 구성되어 있어 전통 건축의 입체적인 공간 활용을 보여준다.

이들 회관은 외부적으로는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내부 구조는 가문 중심의 의례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원과 주택, 행정 공간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 모델이다. 내부에는 유교, 도교, 불교적 상징이 혼합되어 있으며, 조상 숭배와 공동체 문화가 어떻게 건축에 구현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호이안에는 일본교(Japanese Bridge, 쩌카우)와 같은 건축물도 존재하며, 이는 17세기 일본인들이 건설한 유일한 동남아 지역 건축물로, 중국-일본-베트남의 건축 기술과 미학이 한데 결합한 드문 사례다. 이 다리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라, 사원과 연결된 종교 공간, 도시의 정체성을 담는 상징적 건축이기도 하다.

 

베트남 호이안의 중국풍 목조건축과 상업 지구의 건축문화

현대 도시와 전통 건축의 공존

호이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현대 도시기능의 조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 호이안은 비교적 성공적인 보존 사례로 꼽힌다. 이는 도시 전역에서 건축물의 재개발을 제한하고, 기존 양식을 유지한 상태에서 내부 구조만 개보수하는 방식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호이안의 전통가옥은 지금도 상점, 식당,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등으로 활용되며,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호이안의 건축이 관광용 ‘재현’이 아니라, 원래의 구조와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전통은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또한 많은 현대 건축가가 호이안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으며, 폭이 좁고 깊은 구조, 중정 중심 설계, 천창 활용 방식은 친환경 건축의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호이안의 전통 건축은 단지 유산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건축의 힌트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