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건축

캄보디아 고산족 주거지의 다층식 저장 구조와 생존 전략

동남아시아 건축 알리미 2025. 6. 11. 13:17

캄보디아 북동부 라타나끼리(Ratanakiri), 몬돌끼리(Mondulkiri)와 같은 고산지대에는 다양한 소수 민족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브룽(Brou), 크렁(Kreung), 탐뿌언(Tampuan) 등의 고산족이 존재하며, 이들은 고도 500m 이상의 산악지형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이들의 주거지는 단순한 주택 구조가 아니라, 생존과 자급자족을 위한 입체적인 저장 공간을 포함한 복합 주거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산족 주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면에서 높이 들어올린 고상식 구조이며, 지붕 밑과 바닥 아래, 그리고 내부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층적 저장 구조를 통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산 환경에서 외부 자원이 쉽게 들어오지 않고, 기후의 불안정성과 해충 피해가 잦다는 점에서 주거와 저장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가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식량을 저장하는 공간을 넘어서, 이들은 씨앗, 건조 식물, 약초, 나무껍질, 사냥 도구, 의복, 종교의식 물품 등을 층층이 배치하여 보관합니다. 각 층은 그 목적에 따라 구분되며, 주민들은 이러한 공간의 배치를 통해 계절별 생존 전략을 실천합니다. 즉, 건축은 이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라 생태적 시간표를 반영한 저장 시스템이자 문화의 일부입니다.

저장 공간의 층별 기능과 구조

고산족 주거지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세 층 이상의 기능적 공간으로 나뉘며, 수직 공간 활용이 극대화되어 있습니다. 바닥 아래, 즉 기둥 위의 공중 공간은 화목 저장소 및 건조 공간으로 사용되며, 나무나 숯, 죽은 나뭇가지들이 정리되어 쌓입니다. 이는 우기 동안 연료 확보를 위한 필수 전략으로, 바닥과 일정한 거리를 둬 습기를 피하고 해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1층 내부는 주거와 함께 가장 다양한 기능이 복합된 공간입니다. 거실, 부엌, 수면 공간이 공존하며, 이곳에는 단기 저장물이 보관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수확한 곡물, 야채, 약용 식물, 잡은 물고기 등은 이 공간에 작은 항아리나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둡니다. 또한, 이 공간에는 의례용품, 가족 기록, 도구함 등이 숨겨진 작은 수납공간 속에 배치되며, 모든 구성원이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2층은 일반적으로 지붕 아래의 건조 공간 또는 장기 저장 공간으로 활용되며, 곡물 저장용 대형 대나무 통이나 옥수수 말리기 선반이 배치됩니다. 이 공간은 햇빛이 잘 들고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곰팡이나 벌레로부터 저장물을 보호하기에 적합합니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이 2층 공간을 의례 전용 구역으로 사용하여, 조상 숭배나 마을 공동 기도 장소로도 이용합니다. 즉, 상징성과 기능성이 동시에 구현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층이 있는 경우에는 거의 창고나 전용 저장고로 사용되며, 출입이 제한됩니다. 이곳에는 다음 해 파종용 씨앗, 희귀 약재, 금속도구나 무기류, 혹은 가보나 전통 의상 등이 보관됩니다. 이는 외부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숨겨진 작은 출입구로 접근하거나, 사다리를 이용해 내부 가족만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됩니다. 이런 구조는 기후 불확실성에 대비한 보험 공간이자, 문화적 기억이 저장된 장소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고산족 주거지의 다층식 저장 구조와 생존 전략

저장 건축과 전통적 생존 전략

캄보디아 고산족의 저장 중심 건축은 단순히 식량 보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조는 기후 변화, 식량 위기,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도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해에 태풍이 몰아치거나, 산불이나 해충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저장층에 보관된 식량과 씨앗은 집단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 됩니다. 이에 따라 저장 공간은 절대적인 보호 대상으로 인식되며, 아이들에게도 일찍부터 사용 규칙과 손대지 말아야 할 물건이 교육됩니다. 또한, 고산족들은 저장 구조를 통해 계절 순환에 따른 행동 패턴을 계획합니다. 우기에는 외부 활동이 어려우므로, 마른 계절 동안 충분히 식량과 자원을 비축해둬야 하며, 이는 건축 설계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저장 구조가 잘 유지되는 가정은 마을 내에서 생존력이 높은 가족으로 평가되며, 혼인이나 제사 등 공동체 활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는 건축을 통한 사회적 위상 형성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저장 구조는 지식의 전승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저장 공간의 구성과 사용법, 해충 방지법, 농사계획 등을 직접 가르치며, 이를 통해 건축과 생존 기술이 세대 간에 자연스럽게 전파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역할이 교육제도나 문서화된 매뉴얼로 대체되지만, 고산족 공동체에서는 건축 자체가 교과서이자 생존 지침서입니다.

외부 영향과 변화 속에서의 지속 가능성

최근 들어 NGO 단체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농촌 개발 프로젝트는 고산족 주거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시멘트 구조나 금속 지붕, 플라스틱 저장 용기 등이 공급되면서 전통적인 다층 저장 구조가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은 도시에 이주하거나 새로운 건축방식에 적응하고 있어, 전통 저장 방식이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 저장 건축의 가치와 효율성을 다시 조명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합니다. 일부 공동체는 친환경 건축 워크숍이나 전통 건축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의 저장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나무나 흙벽돌 등 전통 재료를 활용하되, 방수재를 보강하고 기초를 개선하는 등의 절충형 건축 설계가 실험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자립, 비용 절감, 문화 보존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층식 저장 구조는 단순한 생활양식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주거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대 도시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공간 절약형, 자원 분산형 건축 전략으로 응용될 수 있으며, 고산족의 지혜는 미래형 생태 건축 디자인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장 구조로 읽는 고산 문화의 깊이

캄보디아 고산족의 다층 저장 주거는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닌, 환경과 공동체, 시간과 기술이 한데 얽힌 생존의 문화입니다. 저장은 그들에게 있어 단지 자원의 비축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공동체를 지키며, 다음 세대에 전할 유산을 품는 실천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산족 주거는 공간 효율성 이상의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니며, 현대 건축이 간과하고 있는 지속 가능성과 생존력의 핵심 원리를 품고 있습니다. 향후 이러한 저장 구조가 지역 관광, 교육, 생태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명된다면, 이는 단지 캄보디아 소수 민족의 문화 보존을 넘어서, 세계적 지속 가능 건축의 사례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닙니다. 건축은 살아있는 유산이며, 다층식 저장 주거는 그 가장 실용적이고 강인한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