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건축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마무주 어촌의 수상 가옥과 조수 적응 설계

동남아시아 건축 알리미 2025. 6. 16. 14:48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서부 해안에 자리한 마무주(Mamuju) 지역은 풍부한 해양 자원과 함께 조수 차가 심한 특성을 지닌 어촌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수 세대에 걸쳐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독특한 수상 주택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특히 마무주 해안의 수상 가옥은 일반적인 동남아 수상 건축물과 구별될 만큼 조수 차이에 최적화된 독자적 설계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무주 지역의 조수 차는 하루 두 차례 큰 폭으로 변화하며, 썰물 시에는 바닥이 드러나고 밀물 시에는 집터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환경이 반복됩니다. 이런 극심한 수위 변화 속에서도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은 ‘조수 순응형 건축법’을 개발하였고, 이는 단순한 생존 기술을 넘어 건축적 융통성과 환경 대응성의 집약체로 평가됩니다.

고상 구조의 높이 조절 원리

마무주의 수상 가옥들은 바다 위 목재 기둥에 의해지지가 되는 고상형 구조입니다. 일반적인 고상주택과 달리, 기둥의 높이가 상당히 높고, 대부분 3~5미터까지 연장되어 극한 밀물에도 바닥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이러한 기둥은 맹그로브 목재, 코코넛 나무, 철목 등 해수에 강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기초부는 조수 침식에 대비해 보강석이나 침목을 추가로 둘러 보호하는 방식이 적용됩니다. 기둥 간의 간격도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좁은 간격으로 촘촘히 배치해 구조적 흔들림을 줄이고, 바닷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수직적 저항력을 최대화합니다. 이러한 기초 설계 덕분에 폭풍우나 높은 파도 속에서도 건물 전체가 유연하게 흔들리며 붕괴 대신 에너지를 흡수하는 설계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가구는 계절에 따라 임시로 기둥 연장 작업을 하거나, 수위 변화가 심한 해안지대에서는 조절형 말뚝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고도의 현장 경험을 통해 전수된 독특한 건축 기술입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마무주 어촌의 수상 가옥과 조수 적응 설계

바닥과 벽체의 유연한 물순응 설계

마무주 수상 가옥의 바닥은 대부분 투과형 대나무 슬랫(slat) 바닥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는 바닷물이 갑자기 밀려올 경우 바닥 위에 압력을 가하지 않고 바닷물이 틈새를 통해 통과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덕분에 바닥 위로 해수의 수압이 축적되지 않으며, 가옥 전체가 물 위에 ‘뜨는 듯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벽체 역시 완전 밀폐형이 아닌 반개방형 목재 패널과 차양형 창문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설계는 바닷바람과 수분이 빠르게 순환하도록 하여 습기 응결, 곰팡이, 목재 부식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높은 습도와 강한 햇빛을 동시에 받는 열대 해양 환경에서 이러한 개방형 구조는 자연통풍과 차광 효과를 균형 있게 유지합니다. 비와 폭풍 대비를 위해 지붕은 급경사의 니파야자 지붕이 사용되며, 지붕 끝 처마가 바깥으로 길게 돌출되어 폭우 시에도 빗물이 실내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합니다. 또한 태양 고도가 높은 열대에서는 이러한 지붕 돌출부가 실내 과열을 막아주는 중요한 차양 역할을 담당합니다.

생활과 어업의 통합형 공간 구조

마무주 수상 가옥은 주거 공간이자 어업 기반 경제활동의 핵심 기반 시설로도 기능합니다. 대부분의 가구는 거주구역과 어구 보관소, 건조장, 수조 시설이 하나로 통합되어 설계됩니다. 주택 아래에는 어획물 저장을 위한 수중 대나무 우리가 설치되어 있어, 잡아 올린 생선을 살아 있는 상태로 임시 저장할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수상 가옥 앞에는 나무 덱을 확장하여 그물 손질, 물고기 말리기, 해초 작업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업장이 형성되며, 이 공간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바쁘게 활용됩니다. 작업 덱은 썰물 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높이를 확보하며, 심한 조수 변화에도 수위에 따른 작업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구조를 유지합니다. 또한 수상 통로와 작은 부교(浮橋)를 활용하여 이웃 간에 연결망을 구성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사회적 교류와 협업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상 네트워크처럼 움직입니다.

현대화와 적응: 변화하는 마무주 수상 건축

최근 몇 년간 마무주 일대에도 현대화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전통 수상 가옥의 구조적 변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가정은 기초에 콘크리트 말뚝을 도입하고, 외벽에 합성 방수 패널을 활용하는 등 내구성과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태양광 발전, 빗물 수집 시스템, 생분해 화장실 등이 접목되면서 현대적 편의성이 결합한 친환경 수상 주택 모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람과 조수 흐름을 받아들이는 기본 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적응은 전통 지혜에 기반을 둔 기술 융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기후위기에 따른 해수면 상승 가능성에 대비하여 일부 시범 마을에서는 플로팅 하우스(부력 기반 수상주택) 도입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조수 적응 건축의 한 단계 진화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수에 순응하는 건축이 남긴 교훈

마무주의 수상 가옥은 단순한 전통 주택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다를 이웃으로 삼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환경 변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유연한 공간 운영의 교과서입니다. 바닷물이 밀려오고 썰물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면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이들의 건축적 지혜는, 오늘날 도시의 방어형 인프라 설계와는 전혀 다른 '공존적 건축 철학'을 보여줍니다. 미래의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플로팅 시티, 부력형 주택 개발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마무주 어촌의 수상 가옥은 현대 수변도시 설계의 원형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단단히 고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 흐르는 건축법 — 이것이 바로 인도네시아 마무주 어촌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건축적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