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건축

라오스 고원의 지하 저장 창고와 통합 건축 방식

동남아시아 건축 알리미 2025. 5. 18. 22:43

동남아시아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 계절 순환에 따른 공간 적응, 그리고 생존 전략으로서의 건축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특히 라오스 고원 지대에 거주하는 일부 소수 민족 공동체는 고산 기후의 불확실성과 식량 보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독특한 방식을 개발해왔다. 바로 주거 공간과 지하 저장 창고를 통합한 구조적 설계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해발 1,000m 이상 고원지대에 거주해왔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기후 조건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식량을 장기 보존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었고, 이를 위해 지면 아래에 ‘보온성과 습도 조절 기능’을 갖춘 저장 공간을 구축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하 저장 공간이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가옥 구조와 물리적으로 연결되거나, 그 위에 거주 공간이 구축된 형태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지하 공간과 건축의 통합, 식량 저장 기술, 문화적 의미, 현대화 접목 사례를 중심으로 이 특별한 건축 전통을 살펴본다.

지하 저장 창고의 구조와 재료적 특징

라오스 고원 지역의 지하 저장 창고는 직경 1.53미터, 깊이 1.52미터가량의 원형 또는 타원형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바닥은 단단한 점토나 화산재 토양을 그대로 다져 단열 성능을 높이고, 벽면은 볏짚과 흙, 나무껍질을 섞은 혼합토로 발라 습기를 흡수하지 않도록 처리한다. 천장은 대나무 혹은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에 흙을 다시 덮어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며, 일부 지역은 돌로 무게를 눌러 외부 동물의 침입을 막는 방식을 사용한다. 창고 내부는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구조로, 겨울철 보온, 여름철 냉방 효과를 동시에 갖고 있다. 라오스의 고산 기후에서는 식량이 쉽게 상하거나 곰팡이가 피기 쉽기 때문에, 공기의 유입과 차단, 흙의 온도 유지력은 이 저장 방식의 핵심이다. 특히 저장용 창고 내부에는 식량을 쌓는 층층 선반, 돌을 깔아 수분을 흡수하는 바닥구조, 대나무 바구니나 항아리를 고정하는 홈이 있어, 단순 저장을 넘어선 입체적 기능 공간으로 발전했다. 주로 보관되는 식재료는 찹쌀, 마른 옥수수, 마른 감자, 말린 고기, 뿌리식물 등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약초, 씨앗, 술 담금 재료도 함께 보관한다. 이처럼 창고 자체가 생계 수단이자, 계절을 뛰어넘는 생존 설비로 작동하면서, 라오스의 고원 주민들에게는 건축과 저장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통합된 생존 시스템이 된 것이다.

주거 공간과 지하 창고의 통합 설계 방식

라오스 고원 지대의 전통 가옥은 대부분 고상식(지면에서 띄운 형태)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지면 위 또는 지하 공간 위에 직접 주거 공간을 구성하는 복합식 구조도 나타난다. 특히 지하 창고 위에 직접 주거 공간이 지어지는 경우, 이는 공간의 효율성만 아니라 단열성과 안전성, 가족 재산의 보호 기능까지 포함하게 된다. 주거부는 일반적으로 목조 프레임 구조에 대나무 벽, 초가지붕 또는 얇은 금속 지붕으로 구성되며, 내부 중앙에는 화로가 있고 주변에 취침 공간과 보관 공간이 배치된다. 이 주거 공간은 지하 창고와 수직적으로 연결되며, 바닥의 숨겨진 뚜껑이나 합판을 들어 올려 창고로 바로 접근할 수 있다. 이는 식량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고도 손쉽게 꺼낼 수 있는 구조이며, 동시에 도둑이나 동물로부터 식량을 보호하는 전통적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이 통합 설계는 가족 단위 생활만 아니라 공동체 규모의 창고와 회의 공간으로도 확대된다. 일부 마을에서는 가장 큰 가옥 하부에 공동 저장소를 두고, 부족원들이 일정량의 식량이나 씨앗을 기탁하고, 필요시 나눠 쓰는 공동 자급경제의 기반으로 활용한다. 이처럼 건축과 저장, 사회 구조가 통합된 전통은 고원 생존 방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계절 순환, 재난 대응, 문화적 의미

라오스 고산 지대에서는 건기와 우기의 뚜렷한 차이, 야생동물 출몰, 교통 차단 등으로 인해 식량 확보가 불규칙하고 불안정하다. 지하 저장 창고는 이러한 변수에 대응하는 중앙 자원 창구로 기능한다. 특히 수확 후에는 마을 전체가 며칠간 지하 창고를 정리하고 새로운 식량을 넣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이때는 축제나 의례를 함께 열어 단순한 저장 행위를 공동체적 행사로 전환한다. 또한, 일부 마을에서는 지하 저장소가 조상의 뼛가루 또는 위패를 임시 보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는 생존과 기억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라오스 고산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창고 청소와 저장 기술을 배우는 것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마을 구성원으로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 지하 창고를 둔 전통 주거는 현대 재난 대응 건축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라오스 고산 지대는 산사태, 이상기후, 작황 감소 등의 문제로 더 큰 식량 불안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하 공간의 보존성과 응급 식량 창고로의 가능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라오스 고원의 지하 저장 창고와 통합 건축 방식

현대화 속 보존과 응용 가능성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도 이 전통적 지하 창고 시스템은 여전히 생존 전략으로 유효하다. 최근 라오스 정부와 국제 NGO, 건축 단체들은 지하 저장고의 구조를 현대 건축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기반의 바닥 단열, 플라스틱 방수막을 접목한 지하 저장소 설계, 또는 지하 공간을 포함한 공동 창고형 학교 급식 시스템 구축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관광과 교육을 접목해 지하 창고 전통을 소개하는 생태마을 체험 행사도 운영된다. 이는 전통 건축의 기능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콘텐츠로 재해석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여전히 지역 주민 자체의 손으로 짓고 유지할 수 있는 건축이라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새로운 세대에게 흙 고르기, 구조 짜기, 환기 통풍 관리, 저장 도구 사용법 등을 전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건축이 단지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문화적 끈이자 생존의 확실한 수단임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