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건축은 궁궐과 사원 같은 전통양식 aks 아니라,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탄생한 비공식 주거 공간 또한 포함한다. 특히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은 지난 30여 년간 급속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을 겪으며, 도시 외곽에 수많은 저소득층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는 건축가의 도면 없이, 법적 허가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지어진 임시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은 흔히 양철 지붕과 나무 판자,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블록 등이 섞인 ‘혼합형 주거’로 존재하며, 공적인 건축의 기준으로 보면 비정상적 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현대 동남아시아 도시 건축의 또 다른 현실이자 생존을 위한 건축적 실험장이다. 여기에서는 프놈펜 외곽의 나무+양철 혼합 주거 형태를 중심으로, 그 구조적 특징, 사회적 맥락, 공간 활용 방식, 그리고 도시화와의 충돌과 적응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나무와 양철의 혼합 구조
프놈펜 외곽 주거지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재료의 혼합성이다. 집의 뼈대는 나무 기둥과 대나무 프레임으로 세워지고, 벽은 합판, 쓰다 남은 합성 플라스틱 판넬, 중고 나무 조각으로 구성되며, 지붕은 대부분 녹슬거나 중첩된 양철판으로 덮여 있다. 때로는 광고 배너나 버려진 천막이 벽의 빈틈을 메우기도 하고, 바닥은 맨 흙바닥이거나 폐타일을 얹은 형태다. 이 구조는 명확한 설계도 없이 필요에 따라, 손에 잡히는 재료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이 주거 유형은 단순한 임시 주택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율적 재구성과 축적된 공간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비가 많은 계절에는 양철 지붕의 기울기를 키우고, 바람이 강한 날에는 덧댄 천막을 걷어낸다. 작은 틈을 통해 빛과 바람을 조절하며,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최적의 생활 조건을 유도하는 민간 건축 기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계획도시의 엄격한 배치와 달리, 유연성과 적응력을 건축에 직접 반영한 생활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공간 구성과 생활 전략
프놈펜 외곽의 혼합형 주택들은 평균적으로 3평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하나의 방 안에서 취침, 조리, 육아, 작업, 저장, 종교적 의례가 모두 이뤄진다. 침구와 식사도구, 장롱과 선풍기가 같은 공간 안에 겹쳐 배치되며, 때로는 한 방에서 세 세대 이상이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집은 크기보다 배치의 기술, 사용 시간의 조율, 공유의 전략이 훨씬 중요하다. 부엌은 대부분 실외 공간에 위치하며, 콘크리트 벽 한쪽에 화덕이나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설치한 구조다. 물을 긷는 공간은 공동 관정 혹은 인근 수로이며, 위생 시설은 간이 화장실이나 공동 화장실로 대체된다. 식재료 저장, 빨래, 아이들 놀이, 어른들의 휴식은 모두 집 주변의 빈 공간이나 도로변, 좁은 골목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집의 외부 공간은 반쯤 ‘공공화’되어, 이웃들과 나누는 ‘열린 생활 인프라’로 기능한다. 또한, 주민들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다기능 가구나 수직적 배치 구조를 스스로 개발한다. 예를 들어, 침대 아래에 식재료와 의류를 보관하고, 벽면에 끈과 고리를 달아 그릇이나 가방을 걸어두는 방식이다. 이러한 생활 전략은 공간의 절약만이 아니라 삶의 안정성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건축적 실천이다.
도시 확장과 주변화된 주거의 갈등
프놈펜은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 외곽으로 확장되어 왔다. 고급 아파트 단지와 외국인 투자 유치 단지, 공단형 산업지대가 확대되면서 도시 내부의 빈곤층이 외곽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했고, 이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현재의 혼합형 주거 지역이다. 그러나 이런 거주 형태는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어, 언제든지 철거 명령, 개발 재편, 홍수 재난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도시 계획 당국은 이를 비공식 거주지(Informal Settlement)로 간주하고, 정비 대상 또는 재개발의 대상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이 집은 직접 지은 유일한 재산이자 일터, 보호막, 가족의 거처이다. 그 결과 빈곤과 불법성 사이의 모순, 도심 성장과 생존 공간의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마을 협의체, 시민단체, 건축 NGO와 협력하여 공동 주거 보존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작은 땅에 여러 가구가 함께 거주하며, 공유지와 통로를 스스로 정비하고, 소규모 재건축 또는 공동 화장실 설치 등을 추진하는 주민 주도 개발 모델도 일부 지역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비공식 건축을 하나의 존엄한 삶의 틀로 인정받기 위한 시도다.
‘가난한 건축’의 가치와 재해석 가능성
프놈펜 외곽의 나무+양철 혼합 주거는 외형적으로 볼 때는 비위생적이고 불안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공간을 조정하고, 물질을 재활용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고도의 건축 전략이 담겨 있다. 이는 ‘못사는 건축’이 아니라, ‘가난한 상황에서 최선을 도출하는 공간 지혜’, 즉 생활 기반형 건축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건축가 라크루아 박사는 이를 두고 “가장 창의적인 건축은 자원이 가장 적은 곳에서 탄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 건축계에서는 이런 저소득 주거지를 대상으로 한 ‘비공식 건축(informal architecture)’, ‘도시의 회색 공간’, ‘서바이벌 디자인’ 등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사례는 동남아시아 도시화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공간과 재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사회적 건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주거는 법적 지위를 갖추진 않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재료는 불완전해도, 삶은 주체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작은 주거 구조는 오늘날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건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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