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건축

캄보디아 수상학교 건축과 지역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설계 전략

동남아시아 건축 알리미 2025. 5. 27. 14:06

캄보디아의 중앙부에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민물 호수인 톤레삽(Tonle Sap)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호수는 매년 우기와 건기에 따라 수면 면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독특한 수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는 수상 가옥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수상 마을'이 다수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마을은 물 위에서의 자급자족 생활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육지와의 연결이 어렵고 교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교육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 지역의 어린이들은 가까운 육지 학교에 다니기 위해 매일 몇 킬로미터 이상을 배로 이동해야 하며, 우기에는 수위 상승으로 통학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사들도 정착이 어려워 상시 교사 확보가 어려우며, 전력 부족과 인터넷 미비로 인해 교육의 질적 격차도 심각합니다. 이처럼 수상 마을의 교육 현실은 물리적 거리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장벽에 의해 교육권 자체가 제약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상학교 건축의 시작과 목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수상학교(floating school)입니다. 수상학교는 단순히 부유식 구조물에 교실을 얹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지역 아동에게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을 제공하고, 동시에 지역 공동체 안에서 교육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입니다. 캄보디아의 수상학교는 일반적으로 폐선박 부품이나 플라스틱 통, 대나무 뗏목 위에 평면 구조물을 얹는 방식으로 건설됩니다. 재료는 저렴하고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며, 구조는 가볍고 단순하여 유지보수가 용이합니다. 이동 가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설계되며, 우기에는 닻을 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는 변화하는 수위와 기후 조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응형 교육 건축 모델입니다. 수상학교의 목적은 단순히 아이들이 글을 배우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교사 정착, 공동체 참여, 지역 역량 강화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지역 개발 전략의 거점으로 기능하며, 건축이 단지 공간이 아니라 변화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수상학교의 설계 전략과 공간 구성

캄보디아의 수상학교는 공간 설계에서도 지역 실정에 맞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첫 번째 전략은 채광과 환기 구조의 극대화입니다. 전기가 없는 환경을 고려하여 지붕의 경사와 천장의 높이를 조정하고, 벽체에 일정 간격으로 창을 배치하여 자연광과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단열과 통풍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학습 효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두 번째는 다기능 공간으로서의 교실 구조입니다. 수상학교 내부는 일반적인 교실만 아니라, 교사 숙소, 창고, 회의 공간, 보건 교육 장소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듈형 구조로 설계됩니다. 교실은 책상과 칠판이 있는 기본 공간 외에도 바닥에서 활동하는 유아들을 위한 좌식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이동할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해 활용도를 높입니다. 세 번째는 구조적 안정성 확보와 유지보수의 용이성입니다. 수상학교는 나무 기둥을 수직 프레임으로 세우고, 부력체 위에 고정해 전체 건축물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건축 자재는 해체와 조립이 쉬운 경량 재료를 선택하고, 필요할 경우 주민이 직접 보수할 수 있도록 단순한 결합 구조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지역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공동체 기반 접근

수상학교가 진정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역 공동체가 학교 운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체계가 병행되어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됩니다. 실제로 캄보디아의 일부 수상학교는 주민들 스스로 건축 자재를 조달하고, 부모들이 순번제로 학교 유지관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사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출신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역 교사 육성 프로그램'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이는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가장 지속 가능한 전략 중 하나로 평가되며, 교육의 자립성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야간에는 어른들을 위한 문해 교육, 환경교육, 위생 캠페인 등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면서, 학교는 자연스럽게 지역 발전의 복합 거점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동체 기반 접근 방식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교육 모델과는 차별화되며, 지역 실정에 맞춘 유연성과 현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닙니다.

 

캄보디아 수상학교 건축과 지역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설계 전략

수상학교 건축의 미래가능성과 사회적 의미

캄보디아의 수상학교는 단지 한 나라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기후 변화와 환경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국제적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홍수, 해수면 상승, 교통 두절 등 다양한 자연재해가 반복되는 지구촌 곳곳에서 수상 건축의 유연성과 기능성이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수상학교는 건축이 단지 멋진 형태가 아니라,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수상학교는 기후 위기로 인한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지역이 불안정한 수면 환경에 직면할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캄보디아의 경험은 유용한 참고가 됩니다. 기술의 발전과 재료의 다양화를 통해, 수상학교는 더 튼튼하고 편리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으며, 디지털 교육 콘텐츠와 연결될 수 있는 기반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상학교는 건축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실감 나게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물 위에 세운 단순한 판잣집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미래를 향한 강력한 움직임 중 하나입니다. 지역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전략은 결국 지역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는 설계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수상학교는 그 대표적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